후루야는 내가 교복을 벗는 악몽을 꾼다고 말한다. 그 꿈이 후루야에게 악몽으로 표현되는 이유는 이렇다. 후루야의 꿈에서 나는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졸업장을 든 채 웃고 있다고 한다. 후루야에게 마지막으로 공이나 한 번 던져 보라고 웃다가는 넥타이를 푸른다. 단추를 하나씩 끄르고 허물 벗듯이 가벼운 몸이 된다. 교복을 다 벗은 채 알몸으로 선 내가 후루야에게 즐거웠어, 안녕, 하고 한없이 홀가분한 얼굴로 말한다는 것이다. “즐거웠어, 안녕, 이라고?”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확인하듯 되묻자 후루야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내 졸업까지는 앞으로 한 달, 그리고 후루야는 삼 개월 전부터 거의 제정신이 아니다. 같이 잠을 자는 날은 더 그렇다. 베개에 머리만 닿았다 하면 잠들던 사람은 어디 갔는지 후루야는 삼십 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새벽 내내 잠을 설쳤다. 깰 때마다 자는 나를 계속 물끄러미 보고 있는지, 내가 간혹 잠이 깰 때면 늘 눈이 마주쳤다. 내가 놀라 헉, 하고 몸을 일으키려 하면 후루야는 내 상체를 껴안고 말한다. “악몽을 꿨어요.” 목이 잠겨 있다. “선배가 교복을 벗는 꿈.”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땐 왜인지 기분이 상해, “야, 내가 나와서 벗는 꿈이면 넌 계 탄 거지 왜 악몽이냐?” 라고 타박을 줬었다. 후루야는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런 게 아니에요, 라고 했다. “선배가 가버리는 꿈.” 후루야는 꿈의 내용을 천천히 설명하더니 다시 말했다. “선배가 멀리 가버리는 꿈.”
내 졸업까지는 앞으로 한 달,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 스스로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정의할 수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내가 제정신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후루야의 꿈을 말했으니 내 꿈 역시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내 꿈에서의 나 역시 꽃다발과 졸업장을 들고 있다. 나는 똑같이 웃고 있기도 하고, 졸업 기념으로 에이스님 공 한 번 받아보자고 후루야에게 장난을 걸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교복을 벗으며 스트립쇼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러고 있으면 후루야가 졸업 축하해요, 라고 말하면서 꽃다발을 하나 더 안겨다 준다. 마지막 말을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즐거웠어요, 안녕히 가세요. 나는 내 꿈을 악몽이라고 표현하지는 않겠다. 졸업 축하해요, 즐거웠어요, 안녕히 가세요, 이 세 마디는 후루야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을 뜨자 이번에도 후루야는 깨어 있다. 피로감이 눈꺼풀로 쏟아진다. 다시 잤으면 좋겠는데.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다시 잤으면 좋겠는데. 기대를 배반하고 들려오는 것은 늘 같은 말이다. “……선배가 날 두고 가버리는 꿈을 꿨어요.” 후루야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문다. 나보고 어떻게든 해달라는 듯이. “…….” 후루야를 흘끗 올려다본다. 건조한 얼굴이다. 내가 즐거웠어, 안녕, 이라고 끔찍하게 두 마디 겨우 내뱉고는 멀리 가버리는 악몽을 꾼다고 말하면서도 후루야는 결코 울지는 않는다. 너는 울지도 화내지도 않고 내가 가는 악몽을 꾼다고 말하지. 후루야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나에게 악몽을 고백한다. 후루야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확신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나도 모르는 확신 말이다. 그런 어마무시한 무게의 확실성을 지닌 믿음. 어쩐지 울컥 화가 치미는 것 같다.
아, 정정해야겠다. 내 졸업까지는 앞으로 한 달. 나 스스로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제정신이라고 말하기도 싫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를 악물고 말하는데 콧잔등이 뜨거워진다. 나도 모르게 후루야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퍽 쳐내고 만다. 우선 한 대.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이 새끼야.” 그리고 한 대 더. “내가 너를, 얼마나…….” 후루야가 내 등에 팔을 두르더니 꽉 껴안는다. 뼈가 아플 정도다. “……내가, 너를 진짜, 얼마나…….”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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