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야를 데리고 오다이바에 가기로 했다.
이야기가 나온 것은 지난 주, 침대에서 후루야와 한창 뒹구는 도중이었는데, 솔직히 그 순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처음 후루야와 자기 시작했을 땐 서로 말 한마디 없이 행위에만 집중하던 것이 시간이 흐르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도중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식으로 점차 변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굴 만났는지, 내일은 무엇을 할 건지, 아침엔 뭘 먹었는지, 무슨 꿈을 꿨는지, ……. 그리고 후루야는 (몹시 유감스럽고 의외의 사실이게도) 그런 순간들을 잘 이용해먹을 줄 알았다. 몸이 거의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 때까지 애태우다가, 갑자기 견디기 힘들 만큼 몰아붙이며 원하는 바를 내 귓가에 대고 슬쩍 흘리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선배, 같이 가요. 다음주 주말 저녁에 괜찮죠? 같이 가줄 거죠? 대답해봐요. 응? 후루야가 뜨겁게 달아오른 숨을 내뱉으며 속살거린 말들을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어땠더라. 대답을 제대로 하기는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조차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후루야가 있는대로 몰아치면서 나에게 물어온 까닭에 나는 정신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후루야는 어울리지 않게도 베갯머리 송사를 아주 잘 하는 남자였다.
후루야가 도쿄에 온지도 4년, 아니 5년째였지만 고교 졸업 이후에도 학교와 기숙사만을 계속 반복했는지 그간 가본 곳을 물으면 대답이 영 어설펐다. 옆을 흘깃 쳐다보자 후루야는 유리창 쪽에 시선을 비스듬히 고정한 채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후루야의 표정이 미묘하게 들떠 보인다. 무인 전철은 처음 타보나? 나라고 오다이바에 여러 번 와본 것도 아니지만.
"돌아올 때는 앞칸에 탈까?"
나는 좀처럼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는 후루야를 데리고 내리면서 물었다. 카이힌코엔역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많잖아요."
"노선 끝쪽에서 타면 되니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슬쩍 올려다보니 당장 얼굴에 속마음이 죄다 쓰여 있었다.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은 기분에 나는 키득거리고 웃었다.
주말의 오다이바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사람들로 붐볐다. 큰 행사라도 있는지 대부분 관광객인 것 같았다. 주말보다는 평일이 나았겠지만 주중엔 둘 모두 바쁘니 어쩔 수 없었다. 대강 배를 채우고 이곳저곳 끌고 다니자 후루야는 금세 지친 기색을 했다. 아니, 그보다는 인파에 질렸다는 정도가 적절한 표현이었다. 나에게는 기를 쓰고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기에 모르는 척 해주기로 했다.
대신 후루야가 간혹 한숨을 쉴 때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도록 뒤에서 손을 몇 번씩 꾹 잡았다 놓았다. 상가의 물건들을 구경하는데 크고 작은 인형을 늘어놓은 곳이 눈에 띄었다. 바깥쪽 벽에 걸린 것을 쭉 훑자 구석에 엄지손가락 만한 흰 곰 인형이 매달린 휴대폰 줄이 있었다. 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후루야의 눈앞에 흔들어보이자 후루야는 내 손목을 잡더니 손바닥을 펼쳐 인형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백곰이네요."
"스카프도 맸어."
"그러네요."
후루야는 조금 기쁜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그런 후루야를 쳐다보다가 충동적으로 내뱉었다.
"사줄게."
"네?"
"여기 야구모자 쓴 것도 있는데."
"아……."
후루야가 턱을 매만졌다. 눈매가 조금 고민의 빛을 띤다. 나는 딱히 더 기다리지 않고 조금 웃고는 직원을 찾아 그냥 계산했다.
"난 아무 것도 사준 게 없는데."
"원래 이런 건 남자친구가 사주는 거거든? 감사히 받으세요 후루야 양."
"누가 후루야 양이에요."
내가 킬킬거리고 웃자 후루야는 발끈했는지 내 손에서 포장된 봉투를 낚아채갔다.
"미유키 선배가 할 말은 아니잖아요."
"어머? 후루야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미유키가 뭘 어쨌다구요?"
일부러 여고생들이나 할 법한 말투로 후루야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찰싹 쳤다. 후루야는 내 우스꽝스러운 흉내에 웃어야 할지 놀림 받은 것에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아, 그게 뭐예요 진짜."
하고는 약간 달아오른 목덜미를 긁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가 조금씩 옆으로 넘어갔다. 아까보다 사람이 부쩍 줄어 후루야는 더이상 한숨을 쉬거나 피곤한 얼굴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후루야의 손을 이따끔 쥐었다. 손가락으로 후루야의 손바닥을 꾹꾹 누르자 후루야가 나를 넘실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다이바 가본 적 있어? 지지난 주 일요일엔가 후루야와 학교 앞에서 라멘을 먹다가 물었었다. 먼저 오다이바 얘기를 꺼낸 것은 사실 후루야가 아닌 나였다. 후루야는 내 물음에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니요. 나는 또 물었다. 그럼 우에노는? 아사쿠사는? 도쿄 타워는? 후루야가 눈을 옆으로 도르륵 굴리며 대답했다. 도쿄 타워는 가본 적 있어요. 그래? 사실 도쿄 타워는 나도 안 가봤는데. 내가 말해놓고 웃자 후루야는 차슈를 건져 먹으며 물었다. 가보면 좋아요? 오다이바. 텔레비전에서 본 적 있어요, 그 전철이요. 나는 그릇을 비우고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무심결에 말했다. 유리카모메선? 나름 좋지. 예전에 야경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같이 갔던 애 이름이 그 노선 이름이랑 비슷해서…… 아.
그게 아마도 후루야가 지난 주 평소보다도 더 심하게 몰아붙였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죄책감에 후루야의 손을 더 꽉 눌러 잡았다. 후루야의 손이 아프다고 투정하듯이 부드럽게 내 손을 감쌌다.
나는 후루야와 다리를 두 개인가 건넜다. 소금 냄새가 약간 났다. 해변 공원에는 주말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연인들이 어깨를 붙인 채 모래사장을 걷거나 벤치에 앉아 사랑을 소곤거렸다.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커플이 우리를 붙잡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남자가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둘러 안고 함께 브이자를 그리며 활짝 웃었다. 생판 모르는 남의 입장에선 우스운 광경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얼굴에 한가득 차오른 행복감이 더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셋을 세고 셔터를 누른 뒤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걸음을 다시 옮기는데 후루야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진 너무 못 찍은 거 아니에요? 머리 부분이 잘렸던데."
나는 짐짓 화난 척 받아쳤다.
"조용히 해."
우리는 역에서 반대 방향 열차에 올랐다. 아리아케역에서 내려 다시 신바시역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탔다. 맨 앞칸의 좌석엔 어린아이 둘이 타고 있어 후루야와 나는 서서 가기로 했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오늘 고마웠어요."
후루야가 몸을 옆으로 붙여오며 속삭였다.
"다음에 또 와요."
"그래, 다음에 또 오자."
"약속이에요."
나는 대답으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후루야가 조심스럽게 내 손가락에 자기 손가락을 얽었다. 그리고는 기습하듯이 말을 던졌다. 전에 같이 왔던 유리카 씨하고는 다시는 이런 데 오지 않는 거예요. 나는 순간 웃음이 터져 어깨를 들썩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미유키 양은 후루야 군밖에 모르는데요? 내가 끅끅거리며 장난치자 후루야가 맞물린 새끼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몇 역인가 지나고 열차 안이 사람들로 점점 채워져, 나도 얌전히 후루야의 옆자리에 몸을 붙여 섰다.
후루야는 여전히 새끼손가락을 엮은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후루야."
부르자 나를 쳐다본다.
"네?"
"멋지지?"
후루야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열차가 천천히 회전했다. 레인보우 브릿지가 쏟아내는 조명이 후루야의 옆얼굴을 비추었다. 후루야는 조용히 말했다. "그러네요. 정말 멋져요."
유리창이 야경으로 젖어들었다.
*2015.10.18
전력이니까 퇴고는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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